예쁜 시

우물 / 안도현

受延 2018. 1. 28. 17:56


 

                   

고여있는 동안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깊은지 모르지만 
하늘에서 가끔씩 두레박이 내려온다고 해서 
다투어 계층상승을 꿈꾸는 졸부들은 절대 아니다

잘 산다는 것은 
세상 안에서 더불어 출렁거리는 일 
누군가 목이 말라서 
빈 두레박이 천천히 내려올 때 
서로 살을 뚝뚝 떼어 거기에 넘치도록 담아주면 된다

철철 피 흘려주는 헌신이 아프지 않고 
슬프지 않은 것은 
고여 있어도 어느 틈엔가 새 살이 생겨나 그윽해지는 
그 깊이를 우리 스스로 잴 수가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