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을 둘둘 말아 낮으로 바꾼 듯
잠은 저만치 도망가고
낮에 오랫동안 운전한 탓에
눈까풀은 내려앉는데
눈만 감으면 빙빙 돈다
잠들지 못하는 밤
뚜걱 뚜걱 걸어온
가을의 속삭임에 뒤척인다
보문사 가는길에 붉게 물든 낙엽을 주워 왔다
길이 너무 막혀 되돌아 왔지만
갈피로 쓰려고 주워 온 붉은 낙엽
시집 사이에 넣느라 펴고 보니
공교롭게도
제목이 잠이다
유시화 / 잠
나를 치유해 준 것은 언제나 너였다
상처만이 장신구인 생으로부터
엉컹퀴 사랑으로부터
신이 내린 처방은 너였다
옅으로 돌아누운 너에게 눌린
내 귀 세상의 소음 잊고
두 개의 눈꺼플에 입 맞춰
망각의 눈동자를 봉인하는 너
중략
내가 숨을 곳은 언제나 너였다
가장 큰 형벌은 너 없이 지내는 밤
내가 베개를 뺄때
나는 아직도 내가 깨어 있는 이곳이 낯설다
때로는 다음 생에 눈뜨게도 하는
너, 잠이여
아~
나는 잠들 수 있을까
보초를 서야 하나 봐
총 대신 붓을 들고 .,
Aurora(A Mother's Touch) - Pat Cleme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