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시계 모래시계 / 신용묵 잤던 잠을 또 잤다 모래처럼 하얗게 쏟아지는 잠이었다 누구의 이름이든 부르면, 그가 나타날 것 같은 모래밭이었다 잠은 어떻게 그 많은 모래를 다 옮겨왔을까? 멀리서부터 모래를 털며 걸어오는 사람을 보았다 모래로 부서지는 이름을 보았다 가까워지면, 누가 누군.. 예쁜 시 2019.10.09
그리운 바다 성산포 / 이생진 그리운 바다 성산포 / 이생진 살아서 고독했던 사람 그사람 빈자리가 차갑다 아무리 동백꽃이 불을 피워도 살아서 가난했던 사람 그사람 빈자리가 차갑다 나는 떼어 놓을수 없는 고독과 함께 배에서 내리자마자 방파제에 앉아 술을 마셨다 해삼 한 토막에 소주 두잔 이 죽일놈의 고독은 취하지도 않고 나만 등대밑에서 코를 골았다 술에 취한 섬 물을 베고 잔다 파도가 흔들어도 그대로 잔다 저 섬에서 한달만 살자 저 섬에서 한달만 뜬 눈으로 살자 저 섬에서 한달만 그리움이 없어질 때까지 성산포에서는 바다를 그릇에 담을 순 없지만 뚫어진 구멍마다 바다가 생긴다 성산포에서는 뚫어진 그 사람의 허구에도 천연스럽게 바다가 생긴다 성산포에서는 사람은 슬픔을 만들고 바다는 슬픔을 삼킨다 성산포에서는 사람이 슬픔을 노래하고 바다가 .. 예쁜 시 2018.08.22
추억이 없다 / 정호승 나무에게는 무덤이 없다 바람에게는 무덤이 없다 깨꽃이 지고 메밀꽃이 져도 꽃들에게는 무덤이 없다 나에게는 추억이 없다 추억으로 걸어가던 들판이 없다 첫 눈 오던 날 첫키스를 나누던 그 집앞 골목길도 사라지고 없다 추억이 없으면 무덤도 없다 추억이 없으면 사랑도 없다 꽃샘바.. 예쁜 시 2018.08.22
그는 /정호승 ᆞ 그는 / 정호승 그는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을 때 조용히 나의 창문을 두드리다 돌아간 사람이었다 그는 아무도 나를 위해 기도하지 않을 때 묵묵히 무릎을 꿇고 나를 위해 울며 기도하던 사람이었다 내가 내 더러운 운명의 길가에 서성대다가 드디어 죽음의 순간을 맞이했을 때 그는.. 예쁜 시 2018.07.22
모른다 / 정호승 모른다 사람들은 사랑이 끝난 뒤에도 사랑을 모른다 사랑이 다 끝난 뒤에도 끝난 줄을 모른다 창 밖에 내리던 누더기 눈도 내리다 지치면 숨을 죽이고 새들도 지치면 돌아갈 줄 아는데 사람들은 누더기가 되어서도 돌아갈 줄 모른다 조관우 - 그래도 넌 예쁜 시 2018.06.22
우물 / 안도현 고여있는 동안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깊은지 모르지만 하늘에서 가끔씩 두레박이 내려온다고 해서 다투어 계층상승을 꿈꾸는 졸부들은 절대 아니다 잘 산다는 것은 세상 안에서 더불어 출렁거리는 일 누군가 목이 말라서 빈 두레박이 천천히 내려올 때 서로 살을 뚝뚝 떼어 거기에 넘치.. 예쁜 시 2018.01.28
한 사람을 잊는다는 건 / 김종원 한 사람을 잊는다는 건 / 김종원 바람이 스쳐가면 머리카락이 흔들리고 파도가 지나가면 바다가 흔들리는데 하물며 당신이 스쳐갔는데 나 역시 흔들리지 않고 어찌 견디겠습니까 정녕 당신이 아니라면 흔들리는 나를 누가 붙잡아 주겠습니까 대체 어쩌자고 그리 사상스런 모습으로 당신.. 예쁜 시 2018.01.23
사랑한단 말은 못해도 사랑한단 말은 못해도 보고 싶었단 말은 해야지 보고 싶었단 말을 못해도 생각이 나더란 말을 해야지 생각이 나더란 말은 못해도 보고 싶었단 말은 못해도 사랑한단 말은 못해도 아아, 세상의 그 어느 말이라도 상관이 없었다만은 차마 안녕이란 말은 말았어야지 안녕이란 말은 말았어야.. 예쁜 시 2018.01.19
사랑의 꿈 / 정현종 사랑은 항상 늦게 온다. 사랑은 생 뒤에 온다. 그대는 살아 보았는가. 그대의 사랑은 사랑을 그리워하는 사랑일 뿐이다. 만일 타인의 기쁨이 자기의 기쁨 뒤에 온다면 그리고 타인의 슬픔이 자기의 슬픔 뒤에 온다면 사랑은 항상 생 뒤에 온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생은 항상 사랑 뒤에 온.. 예쁜 시 2017.1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