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 9

애틋해서..

얼마만에 단비였던가 가을이 뚝뚝 흐르고 있다 이 아름다운 풍경 속을 오늘은 마음으로 걷고 있다 아마 어제 비 때문에 제대로 걷지 못한 탓일 거다 요즘은 자신만 챙기려 노력한다 그것은 아마 내가 나에게 애틋해서 그런가 보다 내 인생의 조각에 감정을 싣고 보니 그런 생각이 들더라 나를 덮친 외적 운명이 신의 영역이라면 내적은 나의 영역이기에 이젠 작은 거 하나까지 더 사랑해야겠다

무제 2022.11.13

다음은 없다

입원 전 찍은 사진을 보니 초조하던 시간이 떠 올랐다 바짝 마른 얼굴 미소 속에 감춰진 불안 입원 육일째다 방역도 느슨해진 토요일 살금살금 병실 탈출 성주가 사 온 음식으로 이른 저녁을 먹으며 오랜만에 아픔도 잊고 수다를 떨었다 맘먹은 것은 바로바로 실행에 옮기며 살자는 그녀 문득 다음으로 미루다 보면 기회가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나 역시 들었다 누구에게나 일어나지 않을 일이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게 삶인 가 보다

무제 2022.09.24

탈출

하루가 갔으니 하루만큼의 고통이 사라졌을까? 이틀 중환자실에 있을 거란 예상에서 벗어나 조금 일찍 탈출했다 상황이 조금 좋아졌다는 사실일 게다 어쨌든 넘치는 자신감 주치의의 허세(?)가 밉지 않고 든든했다 아직 장담할 수 없지만 난 교수님의 말씀을 믿는다 너무 아프니 아픔을 못 느꼈다 너무 고통스러워 아마 제정신이 아니었을 것이다 자다 깨다 깨다 자다 30시간 만에 중 환자실을 탈출했다 입원 육일째 오후에 친구가 온다니까 자꾸만 시계를 본다

무제 2022.09.24

셀프 위안

핵의학과 검사실 전신 조직의 포도당 주사 방사선 의약품 정맥 주사 후 60분 대기 PET-- CT 양전자방출 단층촬영 낯선 단어를 보고 또 보았다 저절로 암기가 됐다 낯선 듯 낯설지 않은 단어 癌 암이라는 글자가 가슴에 문신처럼 새겨졌다 내 사랑의 피눈물이 모여 더 진하게.. 조직 검사할 때도 CT 촬영할 때도 긴가민가 했었는데.. 건강검진 덕분에 '일찍 발견했다'는말 셀프 위안 중이다

무제 2022.09.04

농담같은 이야기

어느덧 구월 시계는 7월에 멈춰있다 6월 29일 건강검진 7월 6일 암 의심이라는 농담 같은 이야기 얼떨결에 받은 "상급병원 소견서" 실감할 수 없는 현실 7월 13일 암 일 확률 80% 또 조직검사 암일 확률 90% 세 번째 조직검사도 역시 8월 24일 암 판정 9월 20일 암 수술 예정 난 여전히 이 현실이 믿기지 않는다 우스갯소리 일 거야 쉰소리 일 거야 부정에 또 부정을 해봐도 癌 癌 癌 .

무제 2022.09.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