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어떤 하루

受延 2018. 3. 15. 01:33


축 가라앉은 날 

안 하던 눈 화장에 장밋빛 립스틱

새로산 수박 빛깔 티셔츠에 흰 바지를 입으니

내면을 숨기고 가면을 쓴 삐까번쩍 봄나들이 차림이 됐다

그리고

기막한 약속이라도 있는 것처럼 호기롭게 집을 나섰다

그러나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생각이 그러니 갈 곳이 없다

욱해서 나왔지만

아하~그렇구나

 

물이 올랐지만 여전히 휑 한 나무 밑에서

괜히 수 없이 앉았다 섰다를 반복하다

버스를 한대 보내고 두대 보내고 또 보내고..

이어폰 볼륨을 한껏 올려 신나는 음악에 몸을 맡겨도

리듬을 따라가지 못하고 마음이 엇박자다

이럴 땐 슬픈 노래가 장땡이다

눈에서 나와 봐야 눈물 일텐데 제까짓게 지치면 멈추겠지

진주가 나오는 것도 아닌데 설마 기를 쓰고 흘릴까

 

새로 개업한 족발집 앞

낮 술 먹는 몇몇 아재들의 울분인지

욕인지 대화인지 모를 시시비비를 흘려들으며

이럴 때 술이라도 한잔 할 줄 알면..

핸드백을 뒤져보니 마침 차 키가 있다

갑자기 엄마밥이 먹고 싶다

무조건 내편인 엄마가 그립다

무작정 언니 집으로

엄마 같은 언니의 따뜻한 밥에 엄마의 기를 듬뿍 받고 돌아 오는 길

자동차 불빛도 하늘의 별도 보석처럼 이쁘다

컴백 홈

아까 입었던 역순으로 휘리릭 옷을 벗고 소파에 몸을 던진다

역순으로 벗은게 맞나?

암튼

욱 하고 오르는 날 이 질서 정염함은 무엇일까

 

봄나들인지 가출인지 맘이 꼬인 날

왜 이야기를 시작했는지 모르겠다

여전히 모르겠다

무언가 끄집어내서 풀어야 하는데 풀지 못해 전전긍긍이다

묵히면 마음도 숙성이 될까

혹시 잘 풀릴까

조금 쉽게 갈 수 있을까

나이를 잘 먹는다는 건

세상과의 타협보다 내 안의 나와 타협을 잘하는 거 같다

난 여전히 서툴다

어른애다



                                                                                          

                                                                                           MY WAY--CELINE D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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