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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배웅

늘 짧아서 아쉬웠던 가을 올해는 포근한 날씨 탓에 왠지 가을이 길었던 느낌이다 11월 끝날 최강 한파 코끝이 찡하다 미처 떠나지 못한 가을 미처 보내지 못한 마음 독하게 떠나는 가을을 배웅한다 올가을, 유독 눈으로만 더 많이 느꼈던 가을 가을의 무게가 깊다 노을보다도 더 붉은 마음 스러져 보이질 않는다 나태주 시인의 '멀리서 빈다'를 암송해 본다

사는 이야기 2022.11.30

애틋해서..

얼마만에 단비였던가 가을이 뚝뚝 흐르고 있다 이 아름다운 풍경 속을 오늘은 마음으로 걷고 있다 아마 어제 비 때문에 제대로 걷지 못한 탓일 거다 요즘은 자신만 챙기려 노력한다 그것은 아마 내가 나에게 애틋해서 그런가 보다 내 인생의 조각에 감정을 싣고 보니 그런 생각이 들더라 나를 덮친 외적 운명이 신의 영역이라면 내적은 나의 영역이기에 이젠 작은 거 하나까지 더 사랑해야겠다

무제 2022.11.13

생존신고

얼마 만에 쓰는 글인가? 흡사 생존신고 같다 며칠 전 기온이 영하로 뚝 떨어진 날 가을이를 만나러 외출 살아 있는 화석이라는 은행나무가 기를 주는 듯했다 황금색 기를 팍팍 받고 왔다 요즘 그랬다 一喜一悲 한편으론 한 없이 슬프고 한편으론 잠시 기뻤다 멀쩡히 걸어가다가 압사 믿을 수 없는 뉴스 끝에 매몰 광부 10 일만에 생환 '커피믹스가 살렸다'라는 속보가 떴다 비상식량 커피믹스 K믹스 일렁이는 運命 일렁이다 못해 휘어져있다 휘청거리는 그 운명에 쇠꼬챙이를 쑤셔 넣고 싶었다

사는 이야기 2022.11.05

다음은 없다

입원 전 찍은 사진을 보니 초조하던 시간이 떠 올랐다 바짝 마른 얼굴 미소 속에 감춰진 불안 입원 육일째다 방역도 느슨해진 토요일 살금살금 병실 탈출 성주가 사 온 음식으로 이른 저녁을 먹으며 오랜만에 아픔도 잊고 수다를 떨었다 맘먹은 것은 바로바로 실행에 옮기며 살자는 그녀 문득 다음으로 미루다 보면 기회가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나 역시 들었다 누구에게나 일어나지 않을 일이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게 삶인 가 보다

무제 2022.09.24

탈출

하루가 갔으니 하루만큼의 고통이 사라졌을까? 이틀 중환자실에 있을 거란 예상에서 벗어나 조금 일찍 탈출했다 상황이 조금 좋아졌다는 사실일 게다 어쨌든 넘치는 자신감 주치의의 허세(?)가 밉지 않고 든든했다 아직 장담할 수 없지만 난 교수님의 말씀을 믿는다 너무 아프니 아픔을 못 느꼈다 너무 고통스러워 아마 제정신이 아니었을 것이다 자다 깨다 깨다 자다 30시간 만에 중 환자실을 탈출했다 입원 육일째 오후에 친구가 온다니까 자꾸만 시계를 본다

무제 2022.09.24